※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영화 ' 정이'의 줄거리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는 폐허가 되어버리고, 인류는 우주에 새로운 터전 ‘쉘터’를 만들어 이주하게 됩니다. 수십 년째 이어지는 내전에서 한국계 여성 용병 '윤정이'는 수많은 작전을 승리로 이끌며 전설이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작전의 실패로 그녀는 식물인간이 되고, 군수 A.I. 개발 회사 크로노이드는 전투용병 개발을 위해 유족에게 동의를 얻어 정이의 뇌를 복제합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이의 딸 '윤서현'은 ‘정이 프로젝트’의 연구팀장이 되어 전투 A.I. 개발에 투입됩니다. 수십 차례의 시뮬레이션에도 실패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서현은 자신은 암에 걸려 시한부 3개월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릴 적 자신의 수술비를 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용병으로 나가야 했던 엄마의 노력과 희생이 덧없어 짐을 깨닫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내전이 서서히 중단될 분위기에 놓이자, 크로노이드는 서둘러 전투 A.I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가정용 AI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개발 소장인 '상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급해진 마음에 결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양한 변수를 주어 '정이'의 뇌를 조작하려고 시도하다가 갑자기 어떤 요인 때문에 미지의 영역에서 뇌가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서현은 로봇과의 인터뷰를 통해 엄마가 마지막 작전에서 실패한 이유가 자신이 준 인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이'에 대한 애착감은 더 커지게 됩니다.
엄마의 모습을 한 정이가 향후 가정용 AI사업에서 가사도우미, 성적인 용도 등으로 쓰일 것임을 알게 된 서현은 마지막 시뮬레이션이 실행되기 전, 정이에게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에 정이는 마치 시뮬레이션에 실패한 것처럼 꾸며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러다가 상훈에게 이 사실을 발각당하고 상훈은 다른 로봇들을 보내 정이를 추격합니다. 정이와 서현은 열차를 타고 도주를 감행하고 이를 눈치채고 열차에 미리 올라탄 상훈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서현은 총을 맞습니다. 전투 중에 상훈은 본인이 로봇임을 인지하게 되면서도 정이를 잡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웁니다. 결국, 상훈은 파괴되고 서현은 정이에게 자신을 두고 도망가라고 말합니다. 정이는 마지못해 서현을 두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 영화의 쟁점
영화는 미래 A.I 기술 개발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인간의 몸은 유한하지만, 뇌만 복제해서 인공의 몸체로 옮기면 영생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도 그럴 법합니다. 뇌만 복제한 전혀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을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테지만, 영화 속 크로노이드 회장은 이를 부인합니다. 아무리 뇌를 복제해 다른 몸에 옮긴다고 할지라도 그건 아바타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서현은 로봇 정이에게 엄마와 같은 애정을 느끼며 결국 그녀를 해방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회장과 서현의 서로 다른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3. 연상호 유니버스
연상호 감독은 그 간의 작품들 속에서 평이 극명하게 나뉘는 편입니다. 2016년 개봉한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호평을 받았지만, 2018년도 개봉 작품인 '염력'은 호된 혹평을 받고 처참한 결과를 기록합니다. 그 뒤로 '방법'과 '지옥'은 호평을 받은 반면, '반도'는 비판을 받으면서 작품마다 다소 극단적인 평을 받았습니다. 이번 '정이' 또한 플롯이 지루하다는 평과 진일보한 CG기술과 액션씬이 괜찮았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시스템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하며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드는 연상호 감독을 응원합니다.
4. 총평
영화 '정이'는 주제가 다소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인 데다가 공감하기 힘든 연상호식 유머코드 때문에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는 꽤 흥미롭다고 생각되며, 어려운 액션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배우 김현주의 연기, 그리고 한국영화로써 보여준 꽤 진일보한 CG는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갑자기 작고한 고(古) 강수연 배우님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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